06 서연은 현관 앞에 굳은 채로 서 있었다. 유린이 처음으로 부탁한 일, 서연이 해 주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고민했다. 단순히 고민했다, 라는 글자로는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유린과 가까워진 것은 서연이 선택한 일이었다. 어쩌면, 아니 명백하게. 서연은 유린을 이용했다. 곧 사라질 사람에게 자신의 ...
05 “오늘은 날씨가 좋았어요.” 유린은 듣고만 있었다. 근래에 들어 서연은 부쩍 말이 많아졌다. 유린은 그에 답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소리 내어 대답하기도 했다. 이야깃거리들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날의 날씨, 뉴스에 나온 이야기, 다른 곳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 등. 서연이 말을 거는 것은 꾸준했지만, 대화에는 맥이 없었고 자주 어색한 침묵이 흘...
04 짧은 종소리가 두 번, 이어서 낮고 긴 종이 다섯 번 울렸다. 다섯 시 삼십 분. 이 카페 테라스에서는 성당의 타종을 들을 수가 있었다. 고개를 높이 들지 않아도, 낮고 오래된 건물들 위로 펼쳐진 하늘이 보인다. 유린은 이 풍경을 마음에 들어 했다. 변화 없이 그저 호수처럼 잔잔한 일상,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인 사람들. 그 풍경의 일부가 된 지도 곧 ...
03 다른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사형수가 자살했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제 목을 찌른 것이었다. 상부에서는 교도소 측의 관리 소홀을 문제 삼았고, 사형수에게는 흉기가 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물건을 소지하지 못하게 하라는 터무니없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일선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필, 펜 등 모든 날카로운 물건들은 압수되었다. 편지 문...
02 언론에서 다룬 바와 달리, 강유린은 전혀 폭력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른 죄수들보다 훨씬 침착했다. 사형수는 죽음을 앞두고 자포자기하여 다른 수감자나 교도관들에게 위해를 입히는 경우가 잦았고, 이는 사형수를 다른 수형자들과 따로 분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강유린은 확실히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것인...
01 “피고인 강유린 씨는…… 2건의 살인 혐의를 인정……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서연은 자신이 잠시 졸고 있던 것을 알았다. 휴게실에 있는 낡은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대체로 뉴스란 서연의 생활과는 하등 관계없는 내용으로만 차 있었으므로, 그는 뉴스나 신문을 보는 데에 긴 시간을 쓰지 않았다...
※ 2017. 12. 12. 1부인 「Schuldlos: ···을 모르는」은 포스타입에 전 챕터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1부 1챕터 링크 : http://posty.pe/18jw68 ) ※ 2016. 12. 31. 표지를 업데이트하였습니다. 챕터 1 전체, 챕터 2 일부, 챕터 5 일부로 샘플 분량을 늘렸습니다. 축전이 4~5P 가량 실릴 예정입니다. '1...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강유린을 안 것은. 정확히 하자면 그 이름을 들은 것은 한두 해 전이었다. 얼굴을 보고 말을 섞은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동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기 시작한, 혼기를 한참이나 놓친 여인. 혹자는 여인이 몽골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했고, 어느 파계승과 정을 통하는 사이라고도 했다. 물론 ...
'#멘션주신_소재로_최애커플_동인지_1p연성' 해시태그로 써 보았습니다. 소재는 개목걸이.....로... 가타(@gata_tear)님께서 주셨습니다. 한페이지는 조금 넘네요. ‘개를 키우지 그랬어요.’ 그 말이 맞았다. 유린의 바람은 그저 그녀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삶의 이유로 삼아 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녀는 유린을 떠났다. 공연히 서연...
※ 2017. 1. 6. 표지를 리뉴얼하였습니다. 현대AU,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검사 주희와 경찰관 서연의 이야기입니다.
※ 17. 1. 6. 제목와 표지를 리뉴얼하였습니다. 초판의 제목이었던 「···을 모르는」은 부제로 변경되었습니다. 현대AU, 사형수 유린과 교도관 서연의 이야기입니다. ※ 일부 취향 타는 소재가 있습니다.소재가 염려되시는 분은 트위터 @vonlooc으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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